8. 도트의 미래/(2) HD 그래픽과 도트
HD 시대, 2D 그래픽의 생존 전략 #2 - 슈퍼 스트리트 파이터 2 터보 HD Remix
windship
2009. 9. 15. 00:42

이미 설명도 필요없을 정도로 유명한 대전 격투 게임 스트리트 파이터 2. 수많은 버전업과 개량판이 나왔지만 원작 자체가 너무나 옛날 게임이기에, 그리고 도트 기반의 태생적 한계로 인해 HD 시대에는 아무래도 뒤떨어진 느낌이 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슈퍼 스트리트 파이터 2 터보 버전의 그래픽을 HD로 리메이크한 슈퍼 스트리트 파이터 2 터보 HD Remix(길다...)가 등장하게 되었고, 이는 HD 시대에 있어 또 다른 2D 그래픽의 진화 형태를 보여주는 본보기로서 주목받게 됩니다.
이 게임은 제작발표가 난 뒤에도 꽤 오랜 시간 발매되지 못했고, 그 동안의 주목도를 유지하기 위해서 중간중간 작업 과정이 공개되곤 했습니다. 그러나 이 작업 과정을 보면, 실질적으로 2D의 진화를 보여주고 있다고 하기엔 아쉬운 부분이 많이 보입니다.
우선 만들어진 기술적 방법 자체도 기존의 소스를 늘린 뒤 그 위에 덧그리는 방식의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 노동 집약적 - 쉽게 말하면 노가다 - 인 방법인데다, 그나마도 중간에 작업 과정이 너무 오래 걸린다는 이유로 초기에 공개된 그래픽 스타일에서 대폭 간략화된 스타일로 바뀌어 버렸습니다.





중간에 제작기간이 길어지면서 변경된 그림의 스타일. 상당히 간략화된 명암 채색법을 발견할 수 있다. 흔히 말하는 셀 애니메이션 스타일의 채색으로 바뀌었지만 기본적으로 명암의 원리와 입체의 구조를 거의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그려진 그림.
게다가 만들어진 그래픽의 스타일은 원작의 느낌도 많이 퇴색하고, 그렇다고 새로운 무언가를 보여주지도 못하는 상당히 어정쩡한 형태로 완성되어 버렸는데, 단순히 HD 해상도로 다시 만들었다는 데에서 의의를 찾는 게 고작이라면 많이 안타까울 수밖에 없겠지요. 원작의 세련된 재창조도 아니고, 새로운 스타일의 제시도 아니기에 그저 원작의 지명도에 힘입어 만들어낸 단순 노동의 산물이라고밖에는 할 수 없는 아쉬운 작품으로 남고 말았습니다.


디자이너는 단순히 요구되는 그림만을 그려주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게임 전체의 컨셉과 분위기를 만들고 이끌어가는 게임 제작에 있어서 선구적인 입장을 견지해야 합니다. 물론 실제 실무에서 게임을 만들 때에 항상 이것을 이상적으로 실현하기는 어렵고, 한정된 기간과 인력, 개발력의 현실 사이에서 적절히 타협점을 찾을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지만, 가능한 한 위와 같은 마음가짐으로 보다 앞서가는 비주얼과 명확한 분위기를 제시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