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도트의 미래/(2) HD 그래픽과 도트
HD 시대와 그 의의
windship
2009. 9. 15. 00:40
3D 그래픽이 본격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했어도 디스플레이의 해상도가 크게 바뀌지 않았다는 사실은 도트 그래픽의 존재 의의를 유지시켜 주고 있었다. PS2 시절까지만 해도 320x240, 640x480 정도의 해상도가 일반적이었고, 이를 위한 그래픽을 만드는 데에는 3D가 아니라면 어쨌든 도트는 필수불가결한 부분이었다. 사진이든 일러스트든 저해상도로 바꾸어 집어넣자면 도트 단위의 편집은 필수적이었고, 이 과정에서 애니메이션을 만들거나 색감을 보정하는 등 도트를 사용한 가공의 비중도 컸다. 무엇보다 이런 저해상도에서는 아직까지 도트로 전부 그래픽을 만들어도 충분히 경쟁력 있는 화면을 보여줄 수 있었다. 어차피 사용자들이 보는 화면은 저해상도였기 때문에, 도트의 각이 보인다는 것에 대해 사용자들도 그다지 불만을 갖지 않았던 시기였고, 브라운관 TV가 아직까지 주종을 이루고 있던 사용자들의 환경에서는 브라운관 특유의 번짐 현상에 의해 도트의 계단들도 보다 부드럽게 보여질 수 있었다.
그러나 모두 아시는 바와 같이 컴퓨터나 콘솔 등 기기 자체의 성능, 그리고 그 화면을 보여주는 디스플레이의 성능은 계속해서 뛰어올라갔다. XBOX가 처음 풀 720p의 시대를 열어젖힌 뒤, PS3과 XBOX360 두 게임기가 본격적인 HD 시대를 개막했다. 하루가 다르게 신제품이 쏟아지는 PC 시장의 그래픽 카드와 모니터는 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게다가 브라운관 TV와 CRT 모니터는 역사의 뒤로 사라져 버리고 LCD가 범용 컴퓨터 디스플레이의 주력 기종의 자리를 차지했다. 해상도도 높아졌지만 보여지는 화면 역시 더 이상 빼도 박도 못할 정도로 칼같은 화면을 보여주게 된 것이다. 이러한 환경의 변화들이 점점 도트 그래픽의 설 자리를 없애 온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사용자들은 점점 도트의 각과 계단에 예민해졌다. 기기와 디스플레이의 높아진 스펙에 따른 해상도의 증가는 필연적으로 도트 그래픽을 도태시키게끔 했다.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기본적으로 480p 이상을 모두 직접 도트로 찍어 그래픽을 만든다는 것은 꽤나 무모한 짓이다. 하물며 720p 이상의 고해상도가 표준이 되어버린 HD 시대에서 도트로 모든 그래픽을 다 작업한다는 것은 조금 과장되게 말한다면 자살행위에 가깝다. 사용자들의 외면과 갑자기 몇 배 이상 뛰어버린 작업량은 도트 그래픽이라는 기법이 사라져 가도록 만들고 있는 두 가지의 큰 요인이다.
이 때문에 오늘날과 같은 HD 시대에서 도트는 분명히 상당부분 과거의 기술로서 3D나 다른 기술들에게 그 자리를 내줄 수밖에 없다. 그것은 분명한 현실이다. 도트 디자이너인 여러분들도 그 사실은 분명히 인식해야 하며, 오늘날 2D 그래픽을 목표로 할 때 도트만 해서는 안된다고 하는 한계도 확실히 알아 두어야 한다.
PC와 콘솔이라는 양대 메인 플랫폼에서 밀려난 도트 그래픽 기술은, 그러나 한동안 휴대 플랫폼에서는 여전히 유력한 기술로 남을 수 있었다. 컴퓨터 디스플레이에서, 픽셀 그 자체의 크기는 한동안 큰 의미가 없었다. 디스플레이를 만드는 기술력의 한계 때문이었다. 어느 정도의 차이와 발전은 있었지만, 대개 물리적인 화면의 크기와 해상도(즉 픽셀 수)는 거의 같은 기준선상에서 이야기할 수 있었다. 640x480이면 대개 어느 정도 크기의 화면이 될 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았고, 그에서 크게 벗어나는 디스플레이도 일반적인 용도에서는 거의 없다고 보아도 좋았다.
바로 이러한 픽셀 크기의 기준이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고 하는 사실이 모바일 플랫폼을 도트 그래픽 디자이너들의 마지막 희망으로 만들어 주었다. 모바일 디스플레이는 어쨌든 손 안에 쉽게 휴대하고 다닐 수 있는 휴대성이 생명이다. 때문에 물리적으로 픽셀수를 늘려 큰 화면을 만들 수 없으므로, 어느 정도 옛날과 같은 저해상도 안에서 승부를 할 수 있었고, 도트는 빠르게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좋은 기술로 남아 있을 수 있었다.
그러나 모바일 디스플레이 역시도 점점 발전을 거듭해오며 서서히 그 한계를 키워오다가, 2010년 애플이 발표한 아이폰 4가 960x640이라는 엄청난 해상도를 선보이고야 만다. 이전 기종이었던 아이폰 3Gs의 480x320의 딱 4배에 해당하는 픽셀수이다. 문제는 역시나 폰이므로 이전 세대와 액정의 크기는 거의 변함이 없다는 것이니, 이것은 결국 하나의 픽셀 크기가 물리적으로 4분의 1로 줄었다는 뜻이 된다.
이 아이폰 4의 엄청난 해상도는 도트 그래픽 디자이너들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사실상 이제 모바일에서조차도 도트의 설 곳은 없어지기 시작했다는 경고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손바닥만한 액정이지만 그 안에 세로 640 픽셀의 해상도가 들어가 있다. 현재 HD 시장의 실질적 스탠다드인 720p에 비해도 결코 부족하지 않은 해상도이며, 조금만 더 기술이 발전하면 말 그대로 손바닥 안에서도 HD 시대가 들이닥쳐 버릴 상황이 온 것이다.
당신은 도트 그래픽 디자이너인가? 도트 그래픽을 배우려고 하고 있는가? 도트는 여전히 훌륭한 기술이고, 컴퓨터 그래픽의 근간을 이루는 가장 기본적인 기술이기도 하다. 하지만 세상은 너무나 빨리 변하고 있고, 당신은 도트 외에도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 더 이상 도트만 잘 한다고 해서 그래픽이 좋은 게임을 만들 수 없다. 그것이 오늘날의 HD 시대이다. 주변의 환경에 항상 눈과 귀를 열고 관심을 갖자. 당신이 이 시대에서 어떻게 살아남아 갈 지를 항상 생각하고 고민하라.